Shakespeare Review
Vol.35 No.4 169199
셰익스피어의 한국 공연 ―
1999. 1 ∼ 1999. 12
신 정 옥 (명지대)
김 동 욱 (성균관대)
오 수 진 (명지대)
금년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예년에 비해 괄목할만한 양적 팽창을 기록했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단일 작품으로는 {햄릿}의 경우, 원전에 비교적 충실한 공연에서부터 관객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모으면서 록으로 또 퍼포먼스로 해체되어 재구성된 공연에 이르기까지 일곱여편의 다채로운 공연들이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99 셰익스피어 상설무대'를 기획한 공연기획 장이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연극 가까이 가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6편의 셰익스피어 주요 작품들을 페스티발 형식으로 묶어 여해 문화공간 무대에 올렸다. 한편, 지난 93년부터 매 3년마다 개최되어 올해 제 3회로 그 화려한 막을 올린 춘천 국제 연극제의 공동 주제도 셰익스피어였다. 여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극단이 {맥베스}를, 독일 극단이 {한 여름밤의 꿈}을 각색한 {달빛의 열기}를 그리고 백제 앙상블 극단이 {햄릿}, {리어왕}, 그리고 {오셀로}등 비극 3편을 하나로 혼합하여 각색한 {남가일몽}을 선보였다. 한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에서도 20세기 마지막 해를 보내면서 '서울 셰익스피어 축제 1999'를 기획하였는데, 이 축제에는 일선 교수들 다수가 직접 기획에서부터 연출, 연기, 스텝에 이르기까지 두루 참여하여 명실상부한 교수 연극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아울러 진행된 각 대학생들의 원어 및 번역 공연도 예년보다 한층 성숙한 수준의 공연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라는 시기적 공감대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혹자의 주장처럼, 올해의 셰익스피어 공연들은 전문 극단급들만 헤아려도 총 46편이 되어, 아마도 이 기록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본 고에서는 그 중에서도 인구에 회자된 주요 공연들만 선별하여 정리 분석하기로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99.1.15 - 3.4 / 대학로소극장
박중현 연출/ 오유경, 강은경, 이희준 개작/ 공연기획 파파 제작
'한 사람 안의 두 마음. 그 두 마음의 종착지는 결국 사랑.'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 나타난 갈등과 반목, 애정 등 여러 요소들을 오직 두 남녀의 사랑에만 초점을 두어 개작되어 무대에 올려졌던 극단 파파의 {로미오와 줄리엣}(박중현 연출)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재 공연되었다.
이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으로 한 사람 안의 두 마음인 현실적 사랑(로미오 블루, 줄리엣 레드)과 이상적 사랑(로미오 블랙, 줄리엣 화이트)이 싹트고 갈등하며 소멸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이 극은 초점을 두고 있다.
자신들의 가슴 저린 사랑을 불태우는 그 순간에 또 다른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던져버리고 싶어한다. '나 흙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 때 그대 살아있을지 모르네'라는 시인의 나레이션은 사랑을 쫓아 죽음을 택한 순수함을 비웃는 현실적 사랑의 존재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98년 공연보다 더 비중이 높아진 결혼식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대를 소유했으므로 그대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기쁘네. 그대를 생각하면 곧 사랑이 넘쳐 난 이 사랑을 제왕과도 바꾸지 않으리'하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예찬으로 극을 맺고 있다.
맥베스
1999. 1. 24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셰익스피어 원작 임경식 각색·연출 / 스튜디오 502 제작
극단 스튜디오 502는 창단 공연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과 같은 줄거리를 진행시키면서도 이층의 무대 위에 코러스로서의 마녀들과 비극의 악순환을 뜻하는 마지막 장면의 재구성을 통해 인간적 삶의 본질로서 인간의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인지된 세계와 불가사의 세계를 부각시키면서 셰익스피어 작품의 청각미와 시각미를 살리고자 했다.
무대 양편에 계단이 있는 이층 무대에서 이층 위의 공간을 셰익스피어 시대의 무대에서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때로는 마녀들의 시각에서, 때로는 맥베스의 시각에서 인간세계와 불가지의 세계를 묘사한다. 일층무대 양측에 놓인 덧마루는 등, 퇴장 및 연기 영역으로 이용된다.
특이한 것은 원작에서는 마녀들이 네 번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 이상 빈번히 등장하면서 코러스의 역할까지 한다. 연출자는 이를 '마녀들이나 유령들의 등장에 원작에 비해 더욱 빈번한 것 역시 불가지의 세계를 시각화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세계 병존 및 맥베스의 권력욕과 살인, 광기를 더욱 극대화시킨 시도로서 극장구조 전체를 이용한 것 못지 않게 맥베스를 시각적으로 확대시켜 보고자한 것'이라 한다.
한편 원작과 달리 재구성한 마지막 장면에서 맬컴은 맥베스를 제거한 공에 대해 맥다프에게 작위를 주고, 폭군의 압제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자신의 동생과 뱅코우의 아들 플리언스를 불러들여 새롭게 국가를 정비하고자 하는 동시에 맥다프로 하여금 배신자들을 색출토록 명한다. 이윽고 이층무대에 세 마녀들이 등장하여 극의 첫 장면과 같이 이번에는 맥베스가 아닌 플리언스를 외치면서 황야에서 그를 만날 약속을 하면서 끝이 난다.
비극의 악순환에 대한 예견인 것이다. 이 작품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띤 배경 속에 사건진행의 신속함을 보여주면서도 셰익스피어 시대 고전의상과 더불어 무대공간 활용도 좋았으나 대체로 대사처리의 묘미와 절제된 감정처리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왕을 살해한 후 너무 심약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맥베스는 원작에서 두려움은 있으나 양심에 비쳐 참회하지 않는 악당 맥베스의 성격창조에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찬탈 - 역사의 블랙홀 속으로
99. 3. 5 - 4. 4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김운기 연출/ 이희준 작/ 극단 작예모 제작
햄릿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구려로 떠났다. 3월 5일부터 4월 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는 극단 작예모의 {찬탈 - 역사의 블랙홀 속으로}에서는 {햄릿}의 이야기가 고구려 유리왕 설화 속에 녹아있다.
왕비를 잃은 유리왕은 차희, 화희 두 왕비를 맞이하게 되는데 나라를 잃고 정복국에 끌려온 차희 왕비는 화희 왕비의 아들 해명왕자마저 없애고 모국의 재건을 꿈꾼다. 왕릉이자 왕궁인 무대에 놓인 토우들이 억울하게 죽은 해명왕자의 원수를 갚는 가상극을 벌인다. '논배미에 않은 꿩(화희)을 누가 잡아먹었나, 아무리 둘러봐도 볏집 더미(차희)뿐 ......' 사건 전말에 대한 토우들의 설화적 암시를 듣고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해명왕자는 복수를 다짐한다. 차희왕비와 해명왕자 간의 왕권 찬탈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나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고사성어나 수많은 은유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극의 내용을 바로 바로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긴 했으나 정감 어린 전통연희 양식에서 빌어 온 소리, 가면, 인형극 그리고 설화적 극 구성 등은 셰익스피어의 한국화를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고 보여진다.
햄릿 1999
99. 4 -- 6 / 유 씨어터 소극장
김아라 연출 / 유인촌 주연 / 방은진, 이혜영, 권성덕, 전진기, 최경원, 정규수 출연 /
극단 유 제작
우리시대에 햄릿역을 가장 많이 소화해낸 유인촌이 그 동안 이끌었던 자신의 '극단 유'의 저력을 바탕으로 연극의 불모지 강남 개척을 선언했다. 청담동에 자신의 극장 '유 씨어터'를 세운 그는 개관 기념 공연으로 {햄릿 1999}를 무대에 올렸는데, 이 공연을 위해 퍼포먼스 공연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온 김아라가 연출로 초빙되었으며, 국립극단 출신의 중견배우 권성덕, 그리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주목받는 이혜영 등 국내의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20세기의 마지막 해의 봄 연극계를 온통 {햄릿}열기로 뜨겁게 달구었다.
김아라의 손을 거친 햄릿은 정치감각이 뛰어난 행동파 햄릿이다. 이러한 연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유인촌은 그 동안 자신이 소화해낸 기종의 햄릿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기말적 햄릿의 모습을 유감없이 그려낸다. 고전들을 과감히 해체하여 퍼포먼스의 재료로 삼아 늘 충격적인 감동을 만들어낸 전위 연출가 김아라는 자신의 연극적 비전과 원전에 묻어 있는 소중한 문학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데 주력했으며, 그녀의 이와 같은 시도가 성공했음은 공연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즉, {햄릿 1999}는 비교적 원전의 플롯과 햄릿의 내면세계를 훼손하지 않은 채, 적절한 긴장과 격렬한 무대 에너지, 그리고 무대 공간의 입체적 사용에서 빚어지는 배우와 관객간의 일치된 호흡 등을 창출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고 평해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타이틀 롤을 맡은 유인촌은 20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시점을 맞아 스스로 또 하나의 {햄릿}을 창조해 낸다는 소명의식이 앞서서인지 기존에 자신이 소화해낸 햄릿보다 한층 역동적인 행동파 햄릿을 그려내기 위해 시종일관 가쁜 호흡을 몰아 쉬어가며 한순간도 극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원전에서의 주인공의 내면 묘사도 유인촌의 이와 같은 에너지 넘치는 연기의 그늘에 가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동인으로만 작용할 따름이다. 검은 스웨터 차림으로 등장하여 광기어린 눈매로 오필리어(방은진 분)의 유방을 거칠게 쥐어 잡는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유인촌이 그려낸 햄릿의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도 같이 염탐과 계책이 난무하는 요즈음의 정치판을 우회적으로 반영한 세계이다. 따라서 어머니 거투르드(이혜영 분)와의 결혼으로 형성된 삼촌 클로디우스 (전진기 분)와의 삼각관계도 오이디푸스 컴프렉스로 설명하기보다는 권력의 찬탈전에서 밀려나 고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이, 유령으로 등장하는 햄릿의 부친(최경원 분)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현실과 신비한 영겁의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기보다는 정치현실의 조언자로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고 할만큼 빈번히 무대에 등장한다.
원전의 대사 분량이 많지 않은 관계로 비교적 적게 등장하는 오필리아 역의 방은진은 차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연기와 풍부한 감정처리를 통해 매우 강인하게 관객들의 기억에 그 잔상을 남긴다. 한편 거투르드 역의 이혜영도 적은 대사로 그리 많지 않은 장면에 제한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여준 연기의 폭과 역량은 그녀로 하여금 금세기를 통털어 최고의 거투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특히 대사를 뛰어넘어 무언의 제스츄어로, 침묵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그녀의 신들린 듯한 연기는 관객들이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앞이마에 부분적으로 드러낸 흰머리 외에는 햄릿과 별로 나이차이를 느낄 수 없는 분장으로 등장한 클로디우스 역의 전진기는 시종 일관된 어투와 거의 유형화된 악역으로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며 열연하는 햄릿의 동선과 훌륭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기회주의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정규수의 로젠크란츠는 클로디우스의 권력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하는 모습을, 그리고 햄릿 앞에서는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요즈음 정치 현실에서의 한 단면을 효과적으로 그려낸 듯한 여운을 남긴다. 한편 이런 식으로 형성된 극적 긴장에 완급을 주며 극 전체의 장면장면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주는 역할은 중견배우 권성덕이 분한 폴로니우스 역이었다. 그는 자칫 단순 구도 속에서 지루하게 전개될 수도 있는 {햄릿 1999}의 무대를 탁월한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예의 능숙한 유연한 연기로 한 차원 고급스럽게 끌어 올렸으며, 동시에 필요에 따라 적절히 호흡을 바꾸어 가며, 때로는 아첨꾼으로, 또 때로는 원로대신으로, 그리고 또 모사꾼으로의 역할을 능란하게 소화해냄으로써 공연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 했다.
한편, 유령의 등장의 배경에 사용된 다채로운 피아노의 선율과 변주를 통한 고음의 클라리넷의 음색과 발랄한 왈츠와 째지는 듯한 금속성의 굉음 등은 복잡한 작품의 내면세계를 효과적으로 암시해 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조명과 무대 디자인도 한데 어우러져 극적 효과를 더해 주고 있는 데, 특히 무대 디자인의 경우 얼마 전 일본 NHK 에서 제작한 {햄릿}이나, 영국의 TOP (런던 바비칸 종합 공연장 내의 the Other Place 소극장)에서의 유형과도 흡사한 구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어서 우리 나라 소극장에서의 무대 디자인 수준이 질적으로도 많이 향상되어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공연 기획 장이는 지난해에 '연극 가까이 가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북촌 창우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상설무대를 선보인데 이어서 올해에도 그 두번째 기획으로 '99 셰익스피어 연극 상설무대'를 마련하고, 주요 작품 6편을 페스티발 형식으로 공연한다.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극단 발굴에 힘써온' 공연기획 장이는 4월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6개월간 월별 릴레이식 셰익스피어 페스티발을 개최하는데, 여기에는 극단 노뜰의 {햄릿}을 필두로 극단 그룹 여행자의 {리어왕}, 극단 무연시의 {헛소동}, 극단 反의 {한 여름밤의 꿈}, 극 발전 연구회의 {실수연발}, 그리고 극단 떼아뜨르 노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어진다. 주로 참신하고 패기에 넘치는 젊은 극단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연극 잔치를 벌이는 공연기획 장이의 대표 김탄일은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우리시대의 아픔과 문제점을 적절히 표현'함과 동시에 '관객들과 가슴 뭉클한 우리시대의 감동을 함께 하고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의욕 넘치는 기획을 2년째 성공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서서히 기성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고전의 상설무대는 페스티발 형식으로 더욱 발전하여 일반 관객들에게 더욱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해 보게 한다.
상설무대 1⼘{햄릿}
1999. 4. 12 - 18 / 여해문화공간
원영오 연출 / 홍영경, 이지현, 최경식, 김대건, 염선정, 이윤신, 조동석 출연 /
극단 노뜰 제작
93년 창단 되어 항상 새로운 연극 언어를 찾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일관해온 극단 노뜰은 탈 언어적인 무대 언어를 사용하여 관객과의 교감을 찾는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97년 모나코 연극 페스티발의 초청 공연과 아비뇽 페스티발에서의 거리 극에서 환경과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강이라는 상징적 배경으로 공연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극단 노뜰은 이번 셰익스피어 상설무대를 통해 {햄릿}을 우리들에게 선보인다. 원작의 언어를 대폭 생략하고, 그 공백을 시각적 이미지로 채우게 되는 데, 그것은 21세기 미래 사회에 남게 될 음모, 욕망, 복수, 그리고 살육이라는 네 개의 주제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는 수단으로는 격렬한 움직임, 거칠게 분출되는 배우들의 동선과 에너지, 다듬어 지지 않은 호흡, 소리, 빛, 그리고 오브제 등이 사용되면서, 원작의 플롯은 해체되어 7개 단위로 나뉘어진 조각 장면들의 재구성된다. 그 첫 번째 장은 '클로디우스의 반란'으로 선왕을 시해하고 권좌에 오른 클로디우스의 대관식이다. 뒤이은 두 번째 장은 망령의 등장으로 원작의 유령을 코러스들이 대신한다. 세 번째인 '욕망의 장례식' 장에서는 거투르드의 장례식에서의 슬픔과 클로디우스의 청혼을 승낙하는 기쁨이 거의 동시적으로 교차한다. 네 번째 장인 '광란의 축제'에서는 클로디우스와 거투르드와의 결혼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편 햄릿은 선왕의 망령들에 에워싸여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반부는 극중극을 통한 햄릿의 확신과 복수를 단행하는 장면으로 원작과는 달리 햄릿은 클로디우스를 살해한 후에 거투르드의 침실로 들어가 그녀의 배신을 질책하며 거칠게 키스를 퍼부은 끝에 그녀의 혀를 물어뜯어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햄릿의 유혈 복수 테마를 극대화한 해석으로 간주되는 원영오의 연출은 탈 언어적 무대 언어의 창출과 각종 오브제 및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들의 사용 등에서 돋보이는 연출 감각을 입증했지만,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문학적 훈련 등의 부재로 작품성의 제고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상설무대 2⼘{리어왕}
1999. 5. 17 - 30 / 여해문화공간
양정웅 각색 및 연출 / 노지향 예술감독 /
오은숙, 정해균, 강수아, 송영학, 윤성보, 이민애, 김지영, 박지연, 장애리, 고지혜, 신철우,
이 인, 정선지 등 출연 /
이상도 의상디자인 / 조유연 무대미술 / 박 환 음악 / 그룹 여행자 제작
지난해에 상설무대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참가하여 연출가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공연계의 주목을 받았던 양정웅과 그의 그룹 여행자는 올해에도 {리어왕}을 각색 연출하여 상설무대 두 번째 무대에 올린다. 원작의 무거운 주제들은 희가극적으로 그려진 공연 스타일로 무리 없이 관객에게 다가오며, 국적불명의 의상과 낯선 시대 배경은 백열등 조명아래서 거침없이 드러내는 젊은 연기자들이 격정적으로 분출해내는 양식화된 움직임들은 어느새 연기공간과 관람석과의 선을 넘나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리어의 절망스러운 말년의 정서를 직접 체험케 해준다. 이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정밀하게 연출된 연기자들의 소리 이미지와 콜라쥬와 몽타지 기법을 혼합하여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장면 구성 등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의 비극의 세계로 유도해 준다. 오브제의 사용, 춤과 마임의 적절한 변형, 돌발적인 등장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등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시각적 변주는 원작에 대한 큰 폭의 손질을 필요로 하지만, 젊은 연출가 양정웅의 반짝이는 재치와 혈기왕성한 연기자들의 왕성한 의욕으로 다소 덜 다듬어진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미래 지향적인 혁신적인 공연이라고 평할 수 있다.
상설무대 3⼘{신연극 도깨비 헛소동}
1999. 6. 14 - 27 / 여해문화공간
김도후 연출/ 극단 무연시 제작
셰익스피어의 즐거운 희극 {헛소동}에 비극의 옷이 입혀지면 어떤 모습일까? 셰익스피어 상설무대의 일환인 극단 무연시의 {신연극 도깨비 헛소동}(1999. 6. 13 - 27)은 원작에서 남녀 여러 쌍이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을 베네디크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로만 한정시킨 데다, 이를 우리 나라의 고려말로 시공을 건너 뛰어 원작에 나오는 즐거운 사랑이야기에 생과 사, 음모와 정의, 사랑과 종말이라는 여러 함수를 대비시켜 존재의 의미를 탐조하고 있다.
막이 오르고 수 백년 전 이승을 떠났던 아랑이 환생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기차 여행 중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을 읽다가 '여랑'이라는 간이역에 내려 무엇인지 모를 힘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끼고 의아해 한다. 연이어 무대는 고려말로 옮겨져 정선군수의 딸인 말괄량이 아랑과 장래가 촉망되는 장수 여랑은 서로 좋아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혼하기로 한다. 한편 몰락한 집안 출신으로 야망도 크고 아랑도 사랑하지만 속마음을 내색하지 못하고 있던 조준은 최영 장군의 사후 이성계 편에 서 새 군수로 임명되어 위세를 떨치는데, 아랑과의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 여랑을 죽인다.
결국엔 폭정을 하던 조준 자신도 죽음을 당하고 극의 마지막에 모두가 '헛소동'이라 하면서 칼로 스스로를 찌르는데서 막이 내린다. 수백 년이 지난 현세에까지 이어지는 끈끈한 애정의 연에 감동 받으면서도 동시에 '헛소동. 인생사, 모두 덧없는 헛소동'이라는 극 중 대사처럼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극이다.
상설무대 4⼘{노동자 보틈의 한여름 밤의 꿈}
99. 7. 5 - 18 / 여해문화공간
박장렬 연출/ 극단 연극집단 反 제작
여러 쌍의 사랑이야기가 얽혀있는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 {한 여름밤의 꿈}이 노동자 보틈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연극집단 反에 의해 무대에 올랐다. 박장렬 연출로 셰익스피어 상설무대의 일환으로 이뤄진 이 공연에서 사랑하는 허미어를 귀족 라이샌더에게 빼앗긴 노동자 보틈은 '내가 귀족들과 다를 게 뭐야'라며 인생이 확 바뀔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그 순간 허미어와 라이샌더는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공작을 피해 아테네를 떠나기로 맹세하고 디미트리어스를 사랑하는 헬리너는 허미어를 흠모하는 디미트리어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 달밤 숲 속에서 두 쌍의 남녀는 쫓고 쫓기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한편 결혼을 앞둔 디슈스 공작의 총각파티에서 연극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직공들은 귀부인 역을 할 인물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데 보틈은 여자 역은 남자가 가면을 쓰고 연기해야 한다는 국법을 어기고 진짜 여자인 바이올라에게 그 역을 맡긴다.
공작 앞에서 공연하다 바이올라의 가면이 벗겨져 그녀는 국법을 어긴 죄로 처형당한다. 이에 분노한 보틈은 디슈스 공작을 죽이고 혁명을 일으켜 노동자로서 평등한 세상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폭동의 주모자로 총살당한다. 그 순간 그가 사랑한 허미어가 보틈을 깨우고 디슈스 공작의 결혼식에 가자고 조른다.
끊임없이 뒤집히고 모순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이 극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대 한켠에 그네를 타는 이가 관객들이 이 혼란스러운 꿈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고 제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연출이 언급한 바대로 '꿈은 불안한 현실의 반영'임을 일깨워 주면서 셰익스피어 극을 통해 우리의 사회 현실을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상설무대 5⼘{실수연발}
1999. 8. 9 - 22 / 여해문화공간
조한신 연출 / 박범규, 송 민, 이준명, 임소영, 전유정, 허 용, 홍용욱, 윤성원 출연 /
극 발전 연구회 제작
사회 속의 연극이란 목표로 결성된 극발전연구회는 공동운영방식으로 운영되는 젊은 연극인들의 모임이다. 단순한 오락으로서의 연극이 아닌 사회의 충실한 거울 역할로서의 연극을 지향하는 극발전연구회는 이번 '99 셰익스피어 상설무대에 {실수연발}가지고 참가한다. 사회의 규율에 의해 개인의 행복이 무참히 희생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더욱 불행한 삶을 맞게 되는 전혀 가볍지 않은 이산 가족의 모티브를 셰익스피어의 초기 소극적 희극인 {실수연발}을 통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하는 '시간'은 서로 어긋나는 경우 오해와 반목, 그리고 불신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지만, 역으로 어느 한순간 모든 오해가 한꺼번에 풀리기도 하는 특성을 지녔다. 두 쌍의 쌍둥이에 의해 복잡하게 꼬이게 되는 원작의 주제가 요즈음의 불신 시대에 투영되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상설무대 6⼘네오 로미오와 줄리엣
1999. 8. 30 - 9. 12 / 여해문화공간
성종훈 연출/ 극단 떼아뜨르 노리 제작
{네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순수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에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힙합을 부르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극단 떼아뜨르 노리가 성종훈 연출로 셰익스피어 상설무대에 올린 {네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무대를 현대의 미국으로 옮겨와 갈등관계에 있는 두 재벌 몬태규가와 캐퓰롯가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기말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회색 잿빛 벽에 삐죽삐죽한 철골 구조물 그리고 날카로운 테크노 음악. 암울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연상시킨다. 무엇이든 욕구를 발산할 대상을 찾아 헤메는 양가의 젊은이들은 일부러 시비를 걸어 칼부림을 한다.
캐퓰롯가의 파티에 몰래 참석한 로미오는 도발적 의상을 입고 격렬하게 춤을 추는 줄리엣에게 한눈에 반한다. 술주정뱅이 로렌스 신부의 주례로 비밀 결혼을 올렸지만 그들에게 비극은 찾아오는데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독을 마신 로미오의 시신 앞에서 줄리엣은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른다.
암담하고 불안한 현실을 떨쳐버리려 아이들은 달리고 또 달려보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고 그래서 그들은 절망한다. 그들이 파괴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들 자신뿐이기에.
오필리어
1999. 5. 1 -2 / 부산시민회관 소강당
조광화 작/ 고인범 연출/ 극단 액터즈
사유하며 갈등하는 햄릿, 결단하며 행동하는 레어티즈, 그리고 순결한 오필리어!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조광화 작, 고인범 연출의 {오필리어}.
셰익스피어의 비극{햄릿}을 {오필리어}의 시각에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가는 햄릿과 레어티즈의 복수심, 오필리어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애정문제를 기본골격으로 하고있다.
원작 {햄릿}이 5막 20장으로 구성된 데 비해 조광화 작 {오필리어}는 서장에서 시작하여 9장이며 전체 10장의 구조다. 서장에서는 오필리어의 죽음을 암시하며 불교적, 민속적 색채를 가미한 {제망매가}(祭亡妹歌)를 수도승 삼 형제들이 합창한다. 이것은 레어티즈에게 나타나는 오필리어에 대한 근친상간적 사랑의 암시가 되기도 한다. 1장에서는 샤머니즘 사상을 내포한 장면들이 나온다. 햄릿과 이야기하는 오필리어의 몸 속에 선왕의 유령들이 들어가 햄릿에게 복수를 강요한다. 마치 무당이라는 영매를 통해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가게 되고,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말과 하고 싶은 말은 전한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의 무속적(巫俗的)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작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의에 찬 오필리어를 그려내고 있는 반면, {오필리어}에서는 햄릿에 대한 실연에 비중을 두어 실연으로 오필리어가 미쳐버리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적용하게 된다. 그러니까 부녀간의 천륜적 사랑보다는 이성간의 사랑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햄릿의 복수행위는 원작에서 보다 더 고뇌에 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3장에서 '죽느냐 죽이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자신의 목숨을 건 필사의 고뇌로 목숨을 버려서라도 부친에 대한 '효(孝)'의 실천으로 복수를 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레어티즈와 오필리어의 근친상간적 사랑의 모습은 1장에서 레어티즈가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는 것으로부터 3장에서 오필리어가 진정으로 햄릿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레어티즈가 질투를 느끼며, 5장에서 오필리어가 다리를 드러낸 모습을 보고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것 등으로 표현했다.
특기할 만한 장면은 들자면 4장에서 원작의 극중극이 궁정에 찾아온 배우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레어티즈와 오필리어가 각각 왕과 왕비의 모습이 되어 팬토마임으로 연기한다. 또 예를 들자면 햄릿의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가 종결되지 못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복수를 가져가니 햄릿에게 평생 따라 다니는 혼돈과 무질서가 저승에 이어진다. 조광화의 {오필리어}는 그의 말처럼 처음부터 싸움에서 싸움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공연에서 높이 평가할 점은 원시적이고 제의적인 에너지로 행연한 점이요, 칸타 주발 등 티베트 악기와 사물이 어우러진 음악 황강록이 심리적 정황을 이끌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랑보다는 복수, 명예를 중시한 선택은 비극적 종말과 그 연장을 암시한다.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강연회, 세미나, 독회, 학술발표회 등 우리 나라 셰익스피어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이끌어 왔는데, 올해에는 공연에까지 그 역량을 확장하여 매년 봄에 개최해온 학술대회와 더불어 기존의 학생 공연을 흡수 확대하여 일선 교수와 일반 극단이 두루 참여하는 '99 서울 셰익스피어 축제'를 개최한다. 학계와 연극계간의 만남의 장을 마련함과 동시에 교단 강의의 필연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교수가 직접 연극으로 셰익스피어를 가르친다는 의도로 기획된 이번 축제에는 교수 공연 팀이 준비한 서울시립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류영균 연출의 {베니스의 상인}무대에 올랐고, 학생 극으로는 건국대 (충주분교)의 {십이야}, 광운대의 {한 여름밤의 꿈}, 고려대의 {오셀로}, 대진대의 {십이야}, 동덕여대의 각색 공연 {셰익스피어의 이중주}, 성균관대의 {리어왕}, 한성대의 {십이야}등이 공연되며, 특히 마침 한국에 들른 영국 퍼포먼스 익스체인지의 {Shakespeare's Greatest Hits}가 원어로 소개된다.
베니스의 상인
99. 5. 6, 7 ; 광운대학교 문화관 / 8, 9 ; 동덕여자대학교 동인관 춘강홀/
14, 15 ; 용산구민회관 / 16, 17 ; 의정부 시민회관/19, 20 ; 서초구민회관/29 ; 동두천 시민회관
신정옥 번역 / 류영균 연출 /
조영창, 박정근, 김미예, 이현우, 김성주, 손 구, 이윤상, 하성민, 신현성, 김상희, 강미경,
서경희, 안정민, 외 출연 /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제작
이 공연의 연출을 맡은 류영균은 머나먼 이국 땅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무대 위에 난데없이 긴 장삼에 삿갓을 쓰고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을 앞세우며 개막을 알린다. 왜 스님이 사용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으로 남는다. 연출가는 크기가 제 각각인 여러 무대를 일관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배경 막에 베니스 항구의 그림을 레이저빔으로 투사하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분명한 느낌으로 전달되는 극중인물들의 감정과 욕구 등은 기성극단의 셰익스피어 공연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 류영균의 연출을 충분히 살려 낼만한 팀웍의 부재로 공연 자체의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공작 역의 이현우, 샤일록 역의 박정근, 밧사니오 역의 조영창, 그리고 네릿사 역의 김미예 등은 모두 현역 교수로 강단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기도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공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관계를 맺어온 프로급 연기자이기도 하다. 특히 전문 연기자로 이 공연에 우정 출연한 포오샤 역의 김성주는 이미 연기력을 검증받은 중견 배우이다. 충분치 못한 준비단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작품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강단에서의 제한를 뛰어 넘어 무대에서 직접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교육했다는 측면에서는 평가할만한 시도였다.
여름밤의 꿈 프로젝트 - 열병
1999. 5. 12 - 14 :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소극장 / 1999. 5. 17 -18 : 동국대학교 극장 /
셰익스피어 원작 /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공동 번안/ 장경민 연출/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제작
이 레퍼토리는 제 7회 젊은 연극제 참가작으로 올려졌으며 아직껏 한국공연에서 낯익혀 온 로맨틱 코미디인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요정의 왕 오베론은 어릿광대. 장난꾸러기 퍽을 시켜 사람들에게 골탕을 먹인다. 이 연극에서 신비세계 최고의 인물임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오베론은 등신대의 거구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야기인 즉 티시어스 공작은 나흘 뒤에 히폴리타와 결혼식을 올린다. 공작은 결혼에 선행하여 나흘 동안 궁전공원을 개방하여 모든 젊은 연인들에게 행복한 추억 만들기를 주선해 준다. 그런데 이야기의 전개는 2막까지 원작 {한 여름밤의 꿈}과 거의 같다. 그러나 3막부터는 변질된 남녀의 사랑이 전개된다. 이 작품은 오베론이 잠에 빠지게 하는 꽃가루를 뿌리면서 전혀 원작과 다른 내용으로 바뀐다.
오베론의 꽃가루를 뒤집어 쓴 장안의 모든 남녀들이 서로 변질된 불륜의 애정행각을 벌인다. 장면은 차례로 나이트 클럽의 나체쇼, 캬바레에서의 불륜관계, 성인 전화방의 퇴폐적 실상, 호스트 바, 오렌지족과 황금족들의 왜곡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 요정의 여왕 타이테니아도 꽃가루를 뒤집어썼는데 사랑을 한 상대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한다.
새벽녘 심한 두통을 느낀 티시어스와 히폴리타는 불길한 예감에 잡혀 신선하고 사랑에 넘칠 결혼식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무기한 연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름밤의 꿈 프로젝트 - 열병}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물질만능주의와 비도덕적 남녀관계를 {한 여름밤의 꿈}의 줄거리를 일부 차용하여 새로운 시각을 조명하여 신랄하게 사회를 비꼰 것이다. 인간의 변질된 사랑과 성의 윤리의식을 배격하는 이 공연은 논픽션한 사실을 그대로 리얼하게 고발한 것으로 정확히 말해 이 극은 실제 사실에 근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사회 고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의 로맨틱 코미디의 취향은 사회 고발적 작품으로 파괴 변질된 것이고, 고발적 작품의 연극으로 치부될 일이다.
리어왕
1999. 6. 4 - 13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셰익스피어 원작 / 이윤택 연출 /
전성환, 박찬영, 김은희, 임해연, 이현주, 이돈희, 이상복, 이재용 외 출연 /
부산시립극단 제작
부산의 척박한 연극 환경 개척을 위해 30여년을 바친 원로배우 전성환의 고별 무대로 부산시립극단이 제작한 이 작품은 연극의 탈중앙화의 계기가 된 작품으로 평가할만한 공연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무대화하기가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는 {리어왕}에 중견 연출가 이윤택이 초빙되어 야심찬 도전장을 내 밀었다. '연출가의 주관을 억제하고 온전히 한 편의 셰익스피어 비극을 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이윤택은 주장하고 있지만, 민속탈을 뒤집어 쓰고 등장한 켄트의 모습에서, 한국적 춤사위를 사용한 장면에서, 그리고 중국식 복장을 하고 등장한 오스왈드의 모습 등에서 이윤택 특유의 재치와 연출적 객기가 노출된다. 특히 원작에서 하나의 터닝 포인트를 이루는 폭풍우와 뇌성벽력이 몰아치는 황야에서 리어가 벌거벗은 채 울부짖는 장면 등이 축소되어 작품의 중심 주제를 어디에서 찾고자 했는지 관객들의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며, 심각한 대목들을 지나칠 정도로 가볍게 다룬 나머지 산만한 느낌을 주는 장면 구성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한편, 전체적으로 방향을 잃고 부유하는 듯이 전개되는 대사들은 역량있는 연기자들의 진지한 연기와 원로 배우의 열연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작품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특히 극의 말미에 이르러 모든 것을 잃은 리어가 찢어질듯한 슬픔으로 절규하면서도 한줄기 새어드는 빛을 향해 '모두 저기를 보라!'하며 마치 희망과 구원의 메세지라도 응시하는듯한 그림을 그려주면서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준비가 덜 된 연출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한심함의 한계점까지 이르고 있다. 영국 왕정복고시대의 네이엄 테이트가 당시의 관객들의 기호에 영합한다는 미명하에 원작을 개작하여 코딜리아와 에드가를 결혼시키고, 리어도 죽지않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멜로드라마로 원작을 훼손한 것과 비견될만한 결말이다. 이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아 진지함이 결여된 연출의 한 좋은 예로 기억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햄릿 프로젝트
99. 8. 6 - 29 : 무천 죽산 야외극장 / 9. 22 - 28 : 문예회관 대극장
찰스 마로윗츠 원작/ 김윤철 번역 / 김아라 각색, 연출/ 극단 무천 제작
광기 서린 햄릿이 죽산의 야외무대에 나타났다. 극단 유의 창단공연으로 {햄릿 1999}를 연출했던 김아라가 이번엔 {마로윗츠 햄릿}을 재료로 햄릿을 다시 요리한 것이다 . 98년의 {인간 리어}를 필두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하나씩 다루겠다던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인 {햄릿 프로젝트}(8월 6 - 29일)에서도 주인공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인간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햄릿 1999}에서는 고뇌하는 햄릿을 집중적으로 다룬 반면 이번 공연에서는 정치혼란, 인간성 부재의 폭력적 현실 앞에 광기로 치달아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햄릿의 모습을 콜라쥬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야외 무대에서의 종합적 예술형태를 지향하고 있는 연출의 의도대로 황신혜 밴드의 리드보컬 김형태가 햄릿으로 분했는데, 대형 철물 구조물과 포크레인까지 동원한 스펙터클한 무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된 영상, 라이브로 연주되는 날카로운 테크노 음악, 마이크로 전해져 오는 등장인물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이 보든 것들이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주변 인물들이 자신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동안 내내 무대 중앙의 수중 무대에 고립되어 현세도 내세도 개의치 않고 복수를 갈망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행동할 수 없는 햄릿으로 하여금 폭력적인 광기를 토해내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인간 리어} 때부터 한 인물의 또 다른 자아를 내세워 객관화시킨 그 인물의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는 연출은 이번에도 등장인물들에게 동일한 방법을 쓰고 있는데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또 다른 자아들이 동시에 무대의 여기 저기에 나타나 괴성을 지르는 통에 관객들이 이리 저리 시선을 옮겨 다니는 동안 연출이 의도한 바를 모두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껴야했다.
이런 야외공연의 모습이 서울 연극제 기간 중 문예회관 대극장의 실내무대에서는 대형 철조 구조물과 포크레인, 연못 등이 모두 사라진 대신 흑백 톤의 간략한 무대 가운데 회의용 의자, 탁자 등을 놓아 액자 틀 속에 갇힌 무대를 보여 주었다.
한 여름밤의 꿈
1999. 9. 7 - 16 /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야외 가설무대
셰익스피어 원작 / 이종훈 연출 / 박정자, 주성중, 김법례, 길성원, 이혜경, 이병준, 송영규 외
서울시 뮤지컬 단원들 출연 / 서울시 뮤지컬단 제작
지난 7월 민간법인으로 거듭난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이는 첫 뮤지컬 {한 여름밤의 꿈}은 '서민곁으로 더 가까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종훈씨가 단장으로 있는 서울시 뮤지컬단이 선보이는 이색 공연이다. 이 공연을 위해 중견배우 박정자씨가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 역으로 우정 출연하여 열연하였다. 우리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전을 뮤지컬로 만들어 딱딱한 아스팔트로 뒤덮힌 도심의 한 복판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의 분수대 야외 가설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한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 주기에 충분한 시도로 평가된다. 도심을 지나는 다양한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전의 향기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 이번 공연을 통해 앞으로 더욱 많은 문화 인프라가 조성되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손쉽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행사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게 한 공연이다. 투명한 아크릴 판이 분수대에 깔리자 그대로 훌륭한 무대가 되는 분수대는 투명판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줄기들의 오색 광선으로 환상적인 요정의 세계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이었으며, 원작의 시적 대사들은 요즘 말로 대체되었다. 뮤지컬 단원들이 역동적으로 흔들어 대는 춤은 전통 무용의 변형이거나 힙합 같은 요즈음의 유행하는 춤들이다. 여섯명으로 구성된 서울 그랜드 팝스의 음악은 한국 전통 음악을 록으로 변형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분수대 주변에 모인 관객들의 축제적인 분위기와 어울어져 한 여름밤의 꿈은 깊어만 가는 것이다.
춘천 국제연극제는 지난 1993년부터 3년에 한번씩 개최하여 왔고 이번이 3회째다. '99 춘천 국제연극제(1999. 9. 8 - 12) 공동 주제가 셰익스피어다. 네델란드와 영국이 {맥베스}를, 독일이 {달빛의 열기}(원작 {한 여름밤의 꿈}), 백제앙상블이 {햄릿}, {리어왕}, {오셀로}의 비극 3편을 각색한 {남가일몽}을 공연하였다. 셰익스피어 극을 통해 세계연극의 흐름을 읽어보자는 뜻으로, 각국이 작품을 발표하여 회원국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부각시켜 보고 연출, 연기 감각도 교류하자는 것이다. 제3회 춘천 국제연극제의 셰익스피어 공연기획의 착상자체는 좋았다 할 것이다.
춘천 1⼘맥베스
1999. 9. 8 / 춘천 문화예술회관
셰익스피어 원작/ H. Meyer 각색· 연출/ Troupe Coyote(네델란드) 제작
코요테 극단은 동서양이 결합된 새로운 연극형태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극단으로 유럽과 일본의 연극제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특히 이들은 일본의 아이키도(AIKIDO)라는 검도로 신체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는 단체로 잘 알려져 있다.
네덜랜드 고요테 극단의 {맥베스}의 내용은 원작과 같지만 일본의 사무라이 의상과 검을 무대에 사용함으로써 동서양의 정서적 결합을 시도하였으나 일본의 사무라이의 법도와 정신을 제대로 소화해 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요테 극단이 보여준 화려한 의상, 참신하고 놀라운 장면회전이 인상적이었다.
춘천 2⼘맥베스
1999. 9. 9 / 춘천 문화예술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