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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RSC공연분석(1999년)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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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재 교수님(광운대)의 논문입니다.

Shakespeare Review

Vol.36 No.4 881­907


영국 왕립셰익스피어극단의 최근 공연동향:

1999년 공연 분석*

신 웅 재

(광 운 대)

1. 서론

1999년 초에 영국 스트랫포드-어폰-에이븐(Stratford-upon-Avon)의 왕립셰익스피어극장(Royal Shakespeare Theatre[RST])을 방문한 관객은 이 극장의 무대구조가 전과 완연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형의 목조 타원형 무대가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를 넘어 객석 깊숙이 뻗어 나와 배우와 관객간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을 뿐 아니라, 객석의 좌우편에서 무대를 바라볼 때의 가시범위가 한층 넓어지게 된 것이다. 또한 악단을 무대 바로 곁의 발코니에 포진시켜 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생음악을 감상하는 기분을 더욱 고조시킨다. 관객으로서는 배우들의 대사와 악단의 음악이 훨씬 더 잘 들림은 물론, 배우들과 훨씬 친근한 분위기에서 보다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관극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셰익스피어 당시의 극장구조를 본받아 그 시대 특유의 배우 관객간의 친밀감을 부활시키려고 시도한 이 변화는 1999년 한해 동안 왕립셰익스피어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RSC])이 기울인 관객중심(audience-oriented 혹은 audience-friendly) 공연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배우 관객간의 친근감을 고조시켜 관극의 흥미를 고조시키려는 노력은 이미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RSC의 또 하나의 극장 스완(Swan)에서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배우들이 객석 사이로 막 뛰어다니거나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법 등을 통해 배우와 관객의 혼연일치감을 고조시키는데, 일례로서 1999년 {맥베스}공연의 경우 배우들이 객석 사이를 1층 뿐 아니라 2-3층 갤러리석의 통로까지 수시로 지나다니며 맥베스의 성문지기는 맨 앞줄에 앉은 관객에게 즉흥적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인물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던컨왕 살해 직후의 맥베스 성문 두드리는 장면(Mac. 2. 2. 56-73)에서 마치 스완극장 내부의 무대와 객석 전체가 성채 내부인 양 모든 출입문을 거세게 두드림으로써 박진감과 함께 관객의 참여 의식을 제고한다.

이처럼 관객을 배려하고 중시하며 그들의 역할의 비중을 현격히 높이려는 시도는 최근 RSC 셰익스피어극 공연의 지배적 경향이다. 비단 무대구조의 변화와 배우 관객간의 친밀한 접촉 뿐 아니라, 온갖 다양한 방법―현대화, 시각적 효과, 에로티시즘, 비극성 완화, 기타 참신성 제고 등―을 동원하여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관중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본 논문은 RSC의 1999년 셰익스피어극 공연물 7편―{말괄량이 길들이기}, {한 여름밤의 꿈}, {맥베스}, {오쎌로}, {리어왕},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아테네의 타이먼}―을 예로 들어 관객중심 공연동향 사례들을 지적하고 그 공과를 논하고자 한다.

2. 현대화

일곱 공연을 통 털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관객위주 공연경향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극의 시대와 의상을 현대화시켜 관객에게 극의 내용을 보다 친숙하게 자신과의 직접적 관련성과 중요성을 느끼면서 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관객으로서는 셰익스피어극을 박물관의 훌륭한 골동품인 양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대신, 자신의 인생과 직결된 문제와 상황을 접하고 해결책까지 모색하는 적극적 자세로 대할 수 있기 때문에 관극의 흥미와 감동이 배가됨은 물론이다. 또한 단순히 시대만 현대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극중인물과 극중사건을 통해 현대의 특정 인물과 사건을 풍자함으로써 관객의 시사적 관심과 흥미를 고조시키는 사례도 볼 수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공연의 서막(Induction)에서 현대의 한 주정뱅이(크리스토퍼 슬라이)가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디스코테크 비슷한 곳의 문밖에 쫓겨나 길 위에 쓰러져 자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신사의 일행들에 의해 일급호텔 방으로 옮겨진다. 그 후 잠이 깬 슬라이는 실내에 비치된 컴퓨터의 인터넷을 통해 본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접속한 다음 자신이 주인공 페트루치오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여러 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현대화 처리이다. 이는 우선 인터넷이 생활화된 현대관객―특히 젊은 세대―에게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친밀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인터넷 접속으로 본극이 시작될 때 무대배경의 대형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말에 탄 루첸쇼와 트래니오가 파듀아로 오고 있는 영화(혹은 비디오)장면이 펼쳐지다가 암전이 되고 다시 조명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이 실제로 무대 위에 나타나 파듀아 도착 직후의 연기를 시작하는데, 이처럼 영화와 연극을 혼합시킨 처리가 연극보다 영화와 비디오에 더욱 익숙해져 가는 현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함은 물론이다. 이는 젊은 층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객에게 생활화된 컴퓨터와 그들이 애호하는 영화나 비디오를 동원하여 관객의 연극 즐기기를 배가시키는데, 다시 말해서 전통적 장르인 연극에 현대적 도구인 컴퓨터와 영화를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또 다른 효과는 슬라이와 페트루치오를 동일인물로 설정하여 원작에 짙게 깔린 남성우월주의를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한낱 주정뱅이의 몽상과 착각에 불과한 것으로 웃어넘기게 함으로써, 남녀평등에 익숙해 있는 현대관객―특히 여성관객―의 이 극에 대한 반감을 해소시키는 점이다. 이는 극작 당시의 철저한 가부장 제도의 한계를 넘지 못한 원작 내용을 현대적 관점으로 수정 발전시킨 셈인데, 이처럼 셰익스피어극 공연의 현대화는 관객 유치 뿐 아니라 원작의 지속적인 변화와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맥베스} 공연이 시작되면 마치 해병대 특공대장 같아 보이는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의 맥베스와 뱅코가 부하들의 목말을 타고 떠들썩하게 등장하여 승전을 자축한다. 던컨왕과 여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유사한 전투복 차림을 하고 있는데, 저명한 아일랜드 언론인 퍼걸 킨(Fergal Keane)이 지적하듯이 이 공연의 무대는 중세 스코틀랜드라기 보다 현재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나 발칸 지역에 가까워 보이며, 주인공 부부는 킨이 구체적으로 거명한 유고연방의 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그의 부인 미리아나 마르코비치를 연상시킨다(2-5).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인 이반 스탐볼리치를 내몰고 권좌를 차지한 후 수많은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강요한 밀로셰비치의 전력은 왕위를 찬탈하고 살육을 자행한 맥베스의 경력과 유사하며, 남편의 배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의 철권통치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강경파 여성 마르코비치는 맥베스 부인과 더욱 더 흡사한데 그녀는 실제로 '발칸의 맥베스 부인'이란 별명을 얻고 있다(이용순 9). 심지어는 마녀들도 마치 코소보 난민 같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무대 위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유혈 낭자한 사건들은 곧바로 CNN을 비롯한 세계 각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듯한 긴박감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이러한 극적 긴장감이 시종일관 유지되도록 이 공연은 중간 휴식시간도 없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한편 맥베스 성의 문지기(Porter)가 마치 현대의 코미디언이 걸쭉한 입담으로 원맨쇼를 벌이듯 익살을 떠는 중에,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를 애매 모호한 언사를 애용하는 정치인('equivocator'[Mac. 2. 3. 9])으로 치부하는 것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낼 뿐 아니라 시사적 흥미를 돋구는 효과적인 정치풍자라 할 수 있다.

시대배경과 의상 및 분장에 있어서 부분적인 현대화를 시도한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은 작품이 발표된 제임스 1세 즉위시의 영국궁중사회의 사치와 낭비가 팽배했던 분위기를 현대사회 풍토와 매한가지로 보고, 그 당시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호화의상과 현대의 사치스러운 최신유행 헤어스타일 등을 한데 섞어 보여줌으로써 고금을 막론한 인간의 사치와 허영 그리고 금전에 의한 윤리적 타락을 공격한다. 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가 황금만능주의가 가장 극심한 현대사회 풍토를 특히 잘 반영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공연은 의상이나 분장 외의 다른 면에서도 군데군데 현대적 처리를 가하였다. 우선 이 공연의 배경음악으로 1960년대 풍의 재즈곡을 채택한 것은 극의 내용을 현대감각에 맞게 인상적으로 전달하는데 기여한다. 현대관객의 귀에 익숙하고 정서에 맞는 재즈곡이 생음악으로 펼쳐짐은 극중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주제의 강한 부각을 돕는 것이다. 맨 처음 타이먼이 아첨배들에게 사치스러운 향연을 베풀 때의 위선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조소하는 듯한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으로 시작하여, 그의 파산 전후의 우울한 멜로디, 마지막으로 그가 철저한 인간혐오자가 되어 증오와 울분에 사로잡혔을 때의 격정적인 음악으로의 전환이 극중 분위기 변화를 시종일관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계하는 메시지가 관객의 폐부에 와 닿게 한다. 또한 연회장에서 염세적 독설가 애피맨터스가 마치 나이트클럽 출연가수인 양 색안경을 끼고 재즈음악에 맞추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냉소적 세태비판―'해가 지면[즉, 파산자에게]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근다네' 'Men shut their doors against a setting sun'(Tim. 1. 2. 141)―을 노랫말 삼아 나직하게 읊조리는 것도 이 공연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대화 처리이다. 이 장면이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는 오락적 흥미만 제공할 뿐이라면, 애피맨터스가 타이먼의 은둔지인 토굴에 찾아왔을 때 마치 햇볕 쨍쨍한 날 일광욕하러 나온 소풍객인 양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파라솔, 땀수건, 돗자리 등을 가지고 와서 자리잡은 후 선탠 로션을 바르는 장면은 비록 염세주의자일지라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현대인의 영악한 개인주의적 모습을 보여주는 효과를 낸다. 그는 땡볕에 노출된 흙과 땀 투성이의 타이먼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나눠 쓰기는커녕 자신의 경고를 듣지 않고 파산한 데 대해 고소해 하는 듯한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모습을 보임으로써, 현대사회에서는 아첨꾼뿐 아니라 충고자도 적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교훈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 밖의 네 공연들도 {리어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대화를 시도한다. {한 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직공들의 복장은 {데일리 텔리그래프}(Daily Telegraph)지의 찰스 스펜서(Charles Spencer)가 지적하듯이 영화 {풀 몬티}의 등장인물들을 연상시키는 소박한 희극적 모습이며, 바텀 역의 대니얼 라이언(Daniel Ryan)은 연기에 자신 넘치는 성격답게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과 숀 코너리(Sean Connery)같은 인기배우들 흉내를 내며 너스레를 떤다(Spencer 384). 대략 20세기 초엽을 시대배경으로 삼은 {오쎌로} 공연은 사이프러스에 파견된 베니스군 진영을 마치 대영제국의 식민지 주둔군인양 보이게 함으로써 흑백인종간의 결혼이 순탄치 못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조성한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공연의 현대식 무대장치와 의상에 관해서는 뒤에 시각적 효과를 다룰 때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심지어는 {리어왕} 공연도 주요 배경음악인 일본 전통음악 사이사이에 현대 전자음악을 섞어 넣어 젊은 관객의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3. 시각적 효과

RSC의 관객유치를 위한 노력은 시대배경의 현대화 뿐 아니라 고도의 시각적 효과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텅빈 무대('empty stage')에서 주로 대사와 연기에 의존하던 1970년대의 모더니즘 공연방식(Shaughnessy 312)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독특한 디자인과 색상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 강조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는 인상적인 외관 추구가 단순히 눈요기 제공으로 끝나거나 심지어는 역효과를 내는 경우와, 극의 주제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심미적 만족감을 선사하는 고도의 시각예술을 창조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리어왕} 공연은 작품내용의 면밀한 분석보다 피상적인 시각적 효과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속이 비어있는 느낌을 준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무대중앙에 육중하게 버티고선 웅장한 일본 전통양식 대문에 노송 한 그루가 양각된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나, 일본인에게 영생을 상징하는 이 노송(Nathan 1429)이 과연 이 공연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미 전달이 불명확하여 단지 무의미한 장식품에 불과한 느낌을 준다. 전반적으로 일본 전통양식의 무대장식과 소품들, 고너릴과 리건의 화려한 기모노 의상, 구슬픈 일본음악, 사무라이 복장과 무술, 그리고 수시로 공중제비를 넘는 광대역의 일본 배우(히로유끼 사나다〔Hiroyuki Sanada〕) 등이 시종일관 흥미로운 이국적 광경을 펼쳐내나 작품의 심오한 분석이나 인물의 복잡한 심리 표출이 미흡하다. 단순히 일본인 연출가 유끼오 니나가와(Yukio Ninagawa)가 자국문화를 소재로 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성향을 드러낼 뿐이다. 시각적 효과에 밀려 주요 대사가 위축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폭풍우장면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무대 위에 마구 떨어지는 모래와 돌덩이들이 관객의 눈과 귀를 압도하며 전율을 느끼게 하나 대자연에 호령하는 리어의 처절한 대사(Lr. 3. 2. 1-24)가 묻히고 만다. 마치 빅토리아조의 거창한 사실적 무대장치로 회귀한 듯한 장관을 연출하는 이 폭풍우 장면이 그보다 더 중요한 리어의 마음 속의 폭풍 전달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떨어지는 돌에 배우가 맞아 다칠까 봐 불안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 폭풍우에 노출되어 서로 꼭 붙어 있는 리어와 광대의 무력한 모습이 측은하기 짝이 없으며 두 사람의 끈끈한 인간적 유대가 더욱 강하게 부각되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장면도 지나치게 지속되다 보니―돌이 너무 오래 떨어지니―식상해지면서 객석 일부에서 웃음소리까지 남으로써 모처럼 느끼게 된 감동이 실소로 전락해 버린다. 전반적으로 스펙터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극의 보다 중요한 요소들―주제, 인물성격, 대사 등―이 약화되고, 사고력과 상상력의 빈곤을 시각적 화려함으로 감추거나 무마하려는 외화내빈의 공연으로 평가된다.

{한여름밤의 꿈} 공연에서 시각적 효과가 가장 두드러진 사례로 극 초반부에 일어나는 인간세계(도시)에서 요정세계(숲)로의 장면 전환을 들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눈이 내리는 가운데 흰색과 회색 혹은 흑색 정장차림의 아테네 공작부부와 귀족들이 차가운 느낌을 주는 흰 벽 앞에서 허미아의 사랑을 사형선고 위협으로 엄금하는 장면이 벌어지는데, 추운 겨울철의 무채색 일색인 배경과 의상이 냉혹한 극중사건과 인물들의 차갑게 굳은 표정에 잘 어울리면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궁중장면이 끝나고 장소가 숲으로 바뀌기가 무섭게 무대판자 틈새로 눈부시게 화사한 꽃들이 수없이 피어오르는데 앞 장면의 무채색에서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시각적 대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때 궁중신하 필로스트레이트(장의사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정장에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몹시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음)와 털외투를 점잖게 입고있던 궁중시녀 한 사람이 서로 다투어 상대방의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의상과 안경 등을 벗겨내더니 각각 웃통 벗은 퍽과 얇은 옷만 걸친 피즈블라썸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드러낸다. 곧이어 트랩도어를 통해 땅속에서 올라와 제멋대로 몸을 놀리는 요정들의 제멋대로의 몸짓과 그들이 한바탕 벌이는 활기찬 군무가 매우 흥미롭고 이색적인 볼거리인데, {데일리 메일}(Daily Mail)지의 마이클 코브니(Michael Coveney)는 요정들의 이 군무를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자유분방하고 격렬한 토속무용에 비교한다(384). 오베론과 티타니아도 씨시어스와 히폴리타와 각각 동일인임을 드러내는데, 손발과 삭발한 머리에 짙은 남색 문신을 한 오베론은 전 장면에서의 근엄한 씨시어스와 매우 대조적이며, 티타니아 역시 허미아 문제로 씨시어스에게 화가나 시무룩해 있던 히폴리타와 전혀 다른 활기찬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인간세계에서 요정세계로의 장소의 변화가 색채와 계절과 인간(성)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현실적 억압과 구속에서 해방된 '한여름밤의 꿈'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로의 전환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이 공연은 이 상반된 두 세계가 화합을 이루는 모습을 극이 끝나기 직전 합동결혼식 피로연에 모인 모든 아테네인들―공작부부, 두 쌍의 연인들, 직공들 등―이 한데 얼려 추는 군무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의 인간들의 신명나는 한바탕 춤이 앞서 있었던 요정들의 격렬한 군무와 매우 흡사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맨 처음 궁중장면에서 보여진 무미건조하고 억압적이던 인간세계가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요정세계를 닮게 된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이는 Northrop Frye가 지적한 셰익스피어의 희극 패턴―'일상세계에서 전원세계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오는 주기적 이동'('rhythmic movement from normal world to green world and back again' [170])―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세계(일상세계)에서의 상심과 갈등이 요정세계(전원세계)에서 해결되어 변화된 모습으로 인간세계에 돌아오는 과정이 두 세계의 화합을 보여주는 이 마지막 군무를 통해 완결되는 것이다. 인위적 제도나 인습이 초래한 갈등―젊은 연인들의 좌절된 사랑과 공작부부의 소원한 관계 등―이 자연적 본능을 발산하는 한바탕 춤과 함께 말끔히 해소되는 것으로 공연이 끝난다.

시종일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맥베스} 공연은 그러한 분위기에 걸맞은 괴기한 장면들을 자주 보여준다. 마녀들이 맥베스와의 두 번째 만남(Mac. 4막 1장)에서 불러내는 유령들은 무대 뒷벽 속에 파묻혀 씰룩거리는 얼굴 윤곽만 보이는데, 마치 흉측한 악마의 탈을 쓴 듯한 혹은 스타킹을 뒤집어 쓴 강도의 머리 같은 섬뜩한 모습들이다. 이는 두 번째의 애매 모호한 예언을 통해 맥베스를 자만시켜 계속 악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악령들의 사악한 이미지를 잘 형상화해 낸다. 또한 맥베스의 눈에 나타난 뱅코의 유령 때문에 연회석이 엉망이 되고 참석자들이 모두 퇴장하기가 무섭게(Mac. 3막 4장), 식탁이 뒤엎어지며 그 밑에 내내 숨어있던 세 마녀가 갑자기 나타나는 장면도 높은 시각적 효과를 거두며 관객을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다. 마녀들은 자신들이 악인으로 만든 맥베스를 다시 한 번 농락하는데 성공했다는 듯이 일제히 박장대소를 터뜨리는데, 이는 악의 유혹자란 도처에 잠복하여 인간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갑자기 출현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효과도 거둔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공연은 우선 독특한 무대장치가 시선을 끌며 관객의 호기심을 일으킨다. 무대 위에 마치 현대 설치미술품 같아 보이는 조형물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것이다. 우선 무대중앙에서 약간 뒤쪽에 세 개의 대형유리가 호를 그으며 일렬로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천체관측의나 피라밋 비슷한 조형물들이 아련한 하늘빛 조명 아래 널려져 있다. 극중의 모든 사건들은 이 유리들 앞에서 벌어지며 인물들이 머나먼 장소로 이동할 때―예를 들면 극 초반에 앤토니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갈 때―퇴장하는 곳인 거울 뒤쪽은 천체관측의와 하늘빛 등이 암시하듯 광대한 공간을 상징한다. 이 반투명한 유리들은 반사와 투시를 동시에 하므로 인물들의 행동을 비춰주는 거울 구실을 하기도 하고 바깥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 구실도 한다. 특히 자기도취 경향이 강한 주인공 남녀가 자신들의 모습과 행동을 지켜보기도 하고 자신들이 통치하는 광대한 외부세계를 내다보기도 하는 데에 유용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거울들은 현세와 내세의 경계선 역할도 하는 듯 이노바버스, 앤토니, 클레오파트라 등의 등장인물들은 죽은 후 일어나서 거울 뒤로 걸어나간다. 이처럼 시각적 흥미를 일으키면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대장치 외에, 이 공연은 현격한 시각적 대비를 이루는 의상을 통해 로마인과 이집트인의 대조적 이미지를 표현한다. 강하고 능률적이나 차갑고 무미건조한 로마인에게는 고속도로 교통경찰관을 연상시키는 검정 가죽옷을 입혔고, 게으르고 퇴폐적이나 낭만적인 이집트인에게는 부드럽고 화사한 비단옷을 입혔다. 이집트에서 로마로의 장소 전환, 혹은 로마인에서 이집트인으로의 등장인물 변화에 따라 총천연색과 무채색이 교차하는 시각적 대조가 두드러져 원작이 시사하는 두 나라의 상반된 민족성 및 가치관을 잘 표현해 준다.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 초반에 펼쳐지는 가장무도회장면에서 십분 발휘된 RSC의 앙상블 연기는 헐리우드의 영화장면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장관을 연출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여장한 남자들이 착 달라붙는 표범무늬 무용복을 입고 맵시 있게 춤추는 이 장면은 리도 쇼나 라스베가스 성인 쇼를 방불케 하는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극 초반부의 향락적 분위기를 잘 표현해준다. 또한 이 공연이 타이먼에게 빚 독촉을 하러 몰려온 자들에게 일제히 두건 달린 검은 우비를 입혀서 마치 한 무리의 저승사자(Grim Reaper), 혹은 시체를 파먹기 위해 펄럭거리며 날아온 까마귀 떼와 흡사한 모양을 보여주는 것은 경제적 파산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냉혹한 세태를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4. 에로티시즘

RSC의 관객유치 전략 중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경향은 에로틱한 장면을 매우 강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대담한 성적 표현은 1999년의 일곱 공연 모두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비단 흥행성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를 강화하거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은 남녀간의 무분별한 애욕을 주제로 삼는 극답게 '성인용 {꿈}'('X-rated Dream'[Spencer 384])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적장면을 시종일관 거침없이 묘사한다. 극 초반부에 장면이 궁중에서 숲으로 바뀔 즈음 앞서 언급했듯이 필로스트레이트와 한 궁녀가 격식 차린 궁중의상을 벗어 던지고 반나의 퍽과 피즈블라썸이 되어 별안간 서로 격렬한 육체적 사랑을 나누려 한다. 가장 인위적 사회인 궁중의 신사숙녀가 가장 자연적 장소인 숲의 요정이 되어 억제된 본능을 발산하는 것이다. 궁중에서 숲으로의 전환을 현실에서 꿈으로의 이동으로 보고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적용하자면, '한여름밤의 꿈'을 꾸는 중에 인간의 초자아(superego)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빠져나온 원시적 충동(id)에서 유발된 성적본능(libido)을 충족시킨다 할 수 있다. 이보다 에로티시즘의 농도가 더욱 짙은 예로서 티타니아와 당나귀로 변한 바텀이 마치 한 쌍의 행복한 들짐승인양 벌이는 격렬한 성행위 장면을 들 수 있다. 마치 담쟁이덩굴이 느릅나무를 감싸듯(MND. 4. 1. 42-43) 바텀을 꼭 껴안은 티타니아가 환희의 절정에 오를 수록 공중에 매달린 그녀의 침상도 하늘로 올라간다. 그녀가 바텀의 지친 모습을 보고 '나무열매를 더 가져다 줄게요'('fetch thee new nuts'[MND. 4. 1. 35])라고 황급히 말할 때, 관객들은 'nuts'의 또 다른 의미(정자를 만들고 남성호르몬을 분비하는 '고환')를 연상하며 폭소를 터뜨린다. 게다가 이 말을 할 때의 그녀의 손은 그의 고환 부위를 더듬고 있다. 티타니아 역을 맡은 흑인 여우 조세트 사이먼(Josette Simon)은 {한여름밤의 꿈} 공연사상 가장 성적매력을 지닌 티타니아 중 하나라는 평을 듣는데(Hagerty 383), 잠을 잘 때엔 다리를 활짝 벌린 자세로 눕고 춤을 출 때엔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몸짓을 보이는 등 인간의 성적충동을 강조하는 이 공연의 연출의도를 최대한 살려낸다. 그녀의 연기는 작품의 한 중요한 주제를 강조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앤토니 역의 앨런 베이츠(Alan Bates)가 클레오파트라 역의 프랜시스 들라투어(Frances De La Tour)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다'('Here is my space'[Ant. 1. 1. 34])라고 외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 극이 셰익스피어의 가장 에로틱한 극 중 하나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는 한 영웅이 지나친 쾌락 추구로 인해 명예와 권력과 목숨까지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연출의도도 있겠으나 선정적인 에로티시즘을 통한 관객유치를 겨냥한 면도 농후해 보인다. 이처럼 극의 시작부터 강조된 주인공남녀의 관능적 이미지는 공연의 시종일관 계속된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클레오파트라의 평상시 복장은 엷은 천을 대충 걸친 정도의 과다 노출된 모습이며, 헝클어진 머리에 술잔을 자주 들고 다니는 앤토니는 향락에 탐닉하다가 파멸하는 전형적인 주색가 모습을 보인다. 이 공연은 극이 끝나기 직전 다시 한 번 선정적인 장면을 보여주는데, 클레오파트라가 자결한 직후 여왕복을 벗어 던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걸어나간다. 이는 여왕의 화려한 외양의 실체가 알고 보면 벌거벗은 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주려는 일차적 연출의도 외에 관객의 관음증을 부추기려는 부수적 의도도 가미되었을 듯 싶으며,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다.

RSC의 1997년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의 남녀주연으로 등장하여 건강한 성적매력을 발산했던 레이 피어런(Ray Fearon)과 조우 웨이츠(Zoe Waites)가 다시 남녀주연을 맡은 {오쎌로} 공연은 둘의 전 공연(신웅재 99)에서처럼 주인공 남녀의 강렬한 성적 애착을 강조한다. 원작에서와 달리 젊은 오쎌로로 등장하는 이 공연의 피어런이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얻게 된 것은 상당 부분 그의 성적매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지며, 웨이츠의 데스데모나도 역시 강한 성적매력으로 오쎌로를 사로잡은 듯하다. 두 남녀는 주위사람들이 보든 말든 수시로 애무나 포옹 등의 신체적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는데, 데스데모나가 사이프러스에서의 축제장소에서 오쎌로를 서둘러 잠자리에 이끌고 가는 모습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캐시오가 술에 취해 일으킨 소동 때문에 데스데모나와의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오쎌로의 벗은 상반신은 육체미선수 같은 근육질을 자랑하는데, 데스데모나가 오쎌로의 외모에 염증을 느껴 간부를 구하게 되었다는 이아고의 모함(Oth. 3. 3. 239-42)이 설득력을 잃을 정도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땅딸보 이아고와 왜소한 로더리고를 비롯한 대부분의 백인 베니스인들―창백한 낯빛의 의원들, 굳은 표정과 무미건조한 군복차림의 군인들 등―에게 남성미나 성적매력과 거리가 먼 외모를 부여함으로써, 이 공연은 오쎌로가 베니스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인종문제 뿐 아니라 그의 남성미에 대한 타인들의 질시에도 기인함을 시사한다. 이 공연이 이처럼 오쎌로의 성적매력을 강조함은 원작내용을 여러 점에서 강화시킨다. 우선 인종차별이 극심한 베니스 사회에서 세도 당당한 의원의 외동딸 데스데모나가 부친과의 의절을 무릅쓰고 흑인을 남편으로 택한 충격적인 행위에 대한 동기를 강화해 준다. 그녀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 브라밴시오가 오쎌로가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믿은 마법('foul charms'[Oth. 1. 2. 73])이 기실 그의 성적매력일 수 있는 것이다. 오쎌로와 에밀리아의 불륜 가능성에 대한 이아고의 의심도 오쎌로의 성적매력을 수긍케 한다. 이 공연의 에밀리아는 남편 이아고에게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가져다 준 대가로 그로부터의 키스나 포옹 등의 신체적 애정표현을 바라는 모습을 역력히 보인다. 이를 알면서도 매정하게 뿌리치는 이아고의 모습은 마치 성적무능력자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이러한 약점이 성적능력이 왕성한 오쎌로에 대한 질투와 증오를 일으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내와 오쎌로의 관계를 의심하며 극도로 괴로워하는데, 이처럼 이 공연의 젊고 성적매력 넘치는 오쎌로 기용은 이아고의 악행의 동기와 신빙성을 보강해 주는 효과적 수단임에 틀림없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공연도 주인공남녀에게 그들의 거친 성격과 행동에 걸맞는 야성적 성적매력을 부여한다. 그들은 서로 팽팽히 맞서 싸우는 중에도 둘 다 성적원기가 넘쳐흘러 보이는 공통점 때문에 어울리는 한 쌍이란 인상을 준다. 이 공연 종반부에서의 캐써리나의 남편예찬은 기실 그녀가 페트루치오의 성적매력에 무조건 항복한 결과라는 느낌을 준다. 이 대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그녀가 페트루치오와 격렬하게 키스하고 애무하는 양을 보면 마치 남편과의 성적쾌락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겠다고 작정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트루치오는 폭력이나 지혜로서가 아니라 성적매력으로 아내 길들이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페트루치오 역시 캐써리나의 성적매력에 반한 모습을 보이는데, 캐써리나가 전폭적인 가부장제 지지선언을 했지만 연극평론가 로저 포스(Roger Foss)의 말처럼 이 부부사이에 최소한 잠자리에서만큼은 평등한 관계가 이루어질듯이 보인다(Foss 1421). 이처럼 이 공연은 성생활만족을 부부화합의 비결로 제시하며 캐써리나의 남편예찬이 진정한 남성우월주의 인정이 아님을 시사함으로써 이 희극에 대한 새롭고 흥미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나머지 세 공연들도 빠짐없이 에로틱한 장면들을 선보인다. 맥베스 부부도 성적인 애정표현을 관객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맥베스가 부인에게 '사내아이만 낳도록 해'('Bring forth men-children only'[Mac. 1. 7. 73])라고 말할 때 손으로 그녀의 음부를 더듬자 흥분한 그녀는 거친 숨결을 내뿜는다. 이는 맥베스 부부의 금실을 강조하는 한 편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장면 처리라 볼 수 있다. {리어왕} 공연에서의 사악한 고너릴은 에드먼드를 상대로 한 그녀의 노골적인 성적 도발에서 볼 수 있듯이 퇴폐적인 성적매력을 물씬 풍긴다. 그녀는 어느 남자든 그녀의 성적유혹에 걸려들기만 하면 치명적인 파멸을 당할 듯한 요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녀가 유혹하는 척 희롱하는 오즈월드가 그녀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의 성관계를 바라는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에 나오는 터키탕 마사지 장면은 금전적 타락 뿐 아니라 성적 방종도 팽배한 사회의 퇴폐적 분위기를 짙게 표현한다. 또한 이 공연에서 여장한 남자들이 섹시한 복장과 동작으로 춤추는 가면무도회 장면은 마치 동성애자 전용 카바레를 방불케 하는데, 한 남자가 여장한 남자무용수에게 구애하다 거부당하자 살해하려고 쫓아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5. 비극성 완화

본 논문이 다루는 일곱 공연 중 다섯 공연이 {아테네의 타이먼}을 제외하곤 소위 '4대 비극'에 속하는 3편과 셰익스피어의 가장 원숙하고 스케일이 큰 극 중 하나로 간주되는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같은 중후한 비극들임에도 불구하고, {맥베스}를 제외한 네 공연 모두가 원작의 숭고한 비극성을 완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신비로운 초월세계의 존재와 영향력을 전제로 하는 비극 본연의 드넓은 세계관이 결여된, 즉 테니슨(G. B. Tennyson)이 지적한대로 사고범위가 이론적 설명과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 일상사건들에만 제한된 현대인의 편협한 시각(Tennyson 61)에 영합한 결과로 보여진다. 미지의 세계나 초자연적 사건보다 친근한 일상사를 선호하고, 심오한 내용보다 흥미진진하고 감상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현대관객의 단순한 취향에 맞추어 장엄하고 숭고한 비극을 감상적 멜로드라마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리어왕} 공연은 주연배우 선정에서부터 중후한 비극성을 표현하여 감동을 주기보다는 애틋한 연민의 정과 애수를 자아내어 관객의 감상적 취향을 만족시키려 하는 연출 의도가 엿보인다. 리어 역의 나이젤 호쏜(Nigel Hawthorne)은 영화 {조지 왕의 광기}(1994년)에서 정신병에 걸린 왕의 처량한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해내어 아카데미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전력이 있는 배우답게 이 극의 후반부에 정신 이상에 시달리는 리어의 가련한 신세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하지만 호쏜은 극 전반부의 영토분할과 폭풍우 장면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대자연과 신들을 향해 호령하는 리어의 권위와 위엄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수잔나 클랩(Susannah Clapp)을 비롯한 여러 연극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역부족인 배우이다(Clapp 1432-3). 원작이 수시로 강조하는 리어의 몸에 밴 권위('Authority'[Lr. 1. 4. 30])와 절대군주로서의 위엄('every inch a king'[Lr. 4. 6. 107])을 보여주는 대신, 이 공연에서의 호쏜의 연기는 코딜리어와의 재회 장면에서와 같은 온순하고 다정한 모습이 주조를 이룬다. 그가 울고있는 눈먼 글로스터를 달래거나 코딜리아의 시체를 앞에 두고 비탄에 잠긴 모습은 가련하기 짝이 없으나 관객의 폐부를 파고드는 비극적 감동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성량도 부족하여 앞서 언급한 요란한 폭풍우를 향해 절규할 때의 가냘픈 목소리는 애처롭게 들릴 뿐 리어의 가슴에 사무친 분노와 고뇌를 십분 표현하지 못한다. 물론 리어역 배우가 항상 벽력같이 고함만 지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턱대고 호통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호쏜의 리어처럼 절제된 연기를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호쏜의 리어가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을 감지하고 '아 광대야! 나 미쳐버리겠구나'('O Fool! I shall go mad'[Lr. 2. 4. 284])라고 말하며 광대를 향해 슬며시 짓는 미소는 백 마디 절규보다 훨씬 더 동정심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의 나약하고 위엄 없는 리어는 연민을 일으킬 뿐 비극의 심오한 메시지와 고양된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인 '경량급 리어'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공연은 인간의 실존과 신의 정의 문제 등에 관한 궁극적 의문을 제기하는 웅대한 비극을 자식에게 버림받은 한 노인의 가엾은 신세를 다룬 가정비극 혹은 멜로드라마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이 공연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나이젤 호쏜의 개인적 인기와 그가 만들어낸 애처롭고 가련한 리어를 선호하는 관객들의 감상적 취향에 힘입은바 큰 것으로 여겨진다.

{오쎌로} 공연은 젊은 층 관객을 겨냥해서인지 주인공 오쎌로를 남성미 넘치는 데다가 오른 쪽 귀를 뚫어 금 귀걸이를 매달고 20세기 초의 화려한 유행의상을 입은 멋진 젊은이로 설정한 결과, 극에 참신성을 부여하기는 하나 주인공의 위엄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오쎌로 역을 맡은 31세의 피어런은 전통적으로 데스데모나보다 훨씬 연상의 근엄한 모습을 보여온 과거의 오쎌로와는 천양지판으로 다른 '현대판 오쎌로'라 불릴 만하다. 따라서 이 공연의 오쎌로는 아내의 불륜 동기를 추정하는 대사를 '아마도 내가 흑인이기 때문에...'('Haply, for I am black'[Oth. 3. 3. 267])에서 멈추고 '혹은 내 나이가 지긋하기 때문에. . .'('or for I am declin'd/ Into the vale of years'[Oth. 3. 3. 271-72]) 부분을 빼버린다. 하지만 이 부부의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에 원작에서처럼 연령의 차이까지 덧붙였다면 오쎌로의 데스데모나에 대한 극도의 의심과 질투에 대한 신빙성이 높아지고 그의 파멸에 대한 비애감도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의 폴 테일러(Paul Taylor)는 이 공연의 오쎌로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데스데모나의 시체 앞에서 통탄해할 때의 모습을 두고,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한 여인의 억울한 죽음을 비통해하는 원숙한 대장부가 아니라 마치 죽은 엄마 앞에서 울부짖는 어린 소년 같다고 혹평하면서 젊고 미숙한 오쎌로 기용을 못마땅해 한다(Taylor 524). 피어런이 뛰어난 연기자임은 틀림없으나 젊은 나이로 인해 인생경험과 근엄성이 부족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니스의 대장군 오쎌로의 영웅적 풍모를 보여주기에 역부족인 듯 하다. 게다가 이 공연의 이아고도 희극배우 기질이 농후한 리처드 맥케이브(Richard McCabe)가 배역을 맡아 희극적 재미를 제공하나 비극의 진지성을 떨어뜨리며, 이아고의 복잡한 성격이 단순화되어 수수께끼 같은 그의 악의 동기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시킨다. 맥케이브의 이아고는 악 그 자체에 심취하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불가해한 성격의 인간이 아니라, 단지 오쎌로와 캐시오 같은 상관들에 대한 신분상의 그리고 외모상의 열등감, 진급에서 밀려난 앙심, 극심한 의처증 등에서 생긴 복수심에 불탈 뿐인 평범한 악인처럼 보인다. 이처럼 이 공연은 이아고 같은 난해한 성격의 악인을 통해 악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오한 비극을 일상적인 복수를 주제로 한 단순하고 흥미로운 멜로드라마로 격하시킨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공연의 남녀주인공 역은 당시 세계정치 구도를 뒤흔든 거물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시종들과 어울려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앤토니가 자신을 '나일강의 뱀'('serpent of old Nile'[Ant. 1. 5. 25])이라고 부른다면서 뱀이 꿈틀대듯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클레오파트라의 경박한 모습에서 일국을 호령한 여왕의 권위를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장난기 많고 변덕스러운 상류층 중년부인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의 별난 희극적 장난기는 원작에도 나오나, 원작이 그보다 더 강조하는 그녀의 여왕―혹은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위엄이 이 공연에서 간과된 것이다. 공연프로그램은 이 극을 '희극적 틀에 담긴 비극적 경험'('a tragic experience embedded in a comic structure'[Adelman 16])으로 규정하는데, 이 공연에서는 희극이라는 껍질만 잘 보이고 비극이라는 알맹이는 찾기 어렵다. 앤토니도 앞서 언급했듯이 주색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여 세계를 호령한 영웅의 풍모를 떠올리기 힘들다. 세계사를 뒤바꾼 두 인물의 장엄한 비극적 최후를 강조하는 대신 앞서 언급한 에로티시즘과 희극성 등의 표면적인 흥미 제공에 치중한다. 인물과 장소와 사건의 중대성과 웅장함이 두드러진 한 편의 서사비극이 소극적 요소가 강한 희비극으로 전락하였다. 또한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죽은 사람들이 관객이 보는 앞에서 무대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과 흡사하게 연극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나 득보다 실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극이 끝날 무렵 클레오파트라의 시신이 옷을 벗고 퇴장해 버리므로 시저는 이 극의 마지막 대사인 그의 애도사를 허공에 대고 하게 되는데 이는 비극적 효과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클레오파트라가 자결 직전 여왕의 예복을 완전히 갖춰 입었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성장한 차림으로 앤토니를 따라가기 위해 막 눈을 감은 모습 바로 앞에서 두 사람('A pair so famous'[Ant. 5. 2. 358])에게 바치는 애도사가 훨씬 더 장엄한 비극감을 고조시킬 것이다.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에서의 앞서 언급한 여장남성들의 가면무도회 장면, 터키탕 마사지 장면, 애피맨터스의 희극적 행동 등은 남녀간의 애정문제가 빠지고 희극적 이완이 거의 없는 이 비극에 볼거리와 흥밋거리 등의 양념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나 비극의 심각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일례로서 이 작품에서 주인공 타이먼의 결함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작가의 대변인 구실까지 하는 중요한 인물 애피맨터스가 너무 코미디언처럼 경박해 보여 극의 주제와 인물성격이 약화된다. 또한 앨시바이어디즈가 아테네 의원들 앞에서 구명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옹호해준 사람(3막 5장)을 앞서 언급한 가장무도회 장면에서 동성애 요구를 거절당하자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로 설정한 것은 맨 나중에 아테네의 질서회복자가 될 앨시바이어디즈의 신뢰도를 깎아 내리기 때문에 저속한 흥미 추구가 비극의 진지성을 약화시킨 경우로 보여진다.

6. 기타 참신한 연기 및 처리

셰익스피어극처럼 널리 알려지고 거듭 보여지는 작품의 공연에 참신성이 없다면 관객의 지속적 유치가 어려우므로, RSC는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표현 방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 배우들의 참신한 연기와 연출가와 무대장치가 등 제작진의 창의적 접근 및 처리를 통해 관객에게 셰익스피어극을 주기적으로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동일극의 새로운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흥미를 유발시켜 관객을 계속 불러모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RSC의 1999년 공연에서도 기발한 고안과 독창성 발휘로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거나 과거의 공연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논해 온 현대화, 시각적 효과 제고, 에로티시즘, 비극성 완화 경향도 많은 경우 작품의 참신성을 높이려는 시도에 속하므로, 이 단락에서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 앞에서 다루지 않은 사례만 취급하고자 한다.

{맥베스} 공연은 시종일관 참신한 연기와 기발하고 교묘한 처리들로 극적 효과를 높이며 극의 주제를 강조한다. 던컨왕이 맬컴왕자를 왕위후계자로 공식 선포하는 자리에서 맥베스는 맬컴을 축하하는 척 포옹하는데, 이러한 외견상의 다정한 제스처가 기실 질투와 살의를 품고 있기에 더욱 섬뜩한 느낌을 준다. 뱅코와 플리언스 부자를 암살하기로 이미 계획한 맥베스가 두 사람이 궁을 떠나기 직전 어린 플리언스를 귀엽다는 듯이 데리고 노는 모습도 마찬가지로 표리부동의 극치를 보여준다. 던컨이 맥베스의 성에 도착하자마자 여주인인 맥베스 부인에게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왕관을 벗어서 맡기는 것과 이에 그녀가 속마음을 들킨 듯 순간적으로 당황해 하는 것도 극적 아이러니 효과를 높이는 기발한 처리이다. 맥더프와의 결투 장면에서 맥베스가 상대방의 칼을 던컨왕 살해 직전 자신의 눈에 보였던 단도로 착각하여 새로이 일깨워진 죄의식과 공포에 떨다가 결국 그 칼에 찔려죽게 되는 것도 사필귀정의 주제를 강조하는 매우 독창적인 고안이라 하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맬컴이 스코틀랜드인 모두의 화평과 결속을 다짐하는 연설을 끝내기가 무섭게 플리언스가 사이비종교 우상 같은 인형(마녀들이 뱅코를 처음 만나 그의 자손들이 왕위를 잇는다고 예언할 때 건네준 것)을 흔들면서 무대 가장자리에 나타남으로써 머지 않아 왕권 다툼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암시를 주는데, 이는 인간세계에서 야심의 유혹과 그로 인한 살육은 계속 반복되리라는 이 공연의 초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뱅코우의 환영 때문에 연회가 엉망이 되고 손님들이 다 떠난 후 정신적으로 탈진상태가 된 맥베스 부부가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울음 섞인 자조적 실소를 터뜨리는 모습도 심리적인 사실감을 높이면서 죄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한여름밤의 꿈} 공연도 앞서 시각적 효과와 에로티시즘을 논할 때 상세히 언급했듯이 기발한 독창성을 시종일관 발휘하여 관객에게 잘 알려진 극임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볼거리와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공연이다. 하지만 공연 전체를 통해 재기 발랄한 처리가 너무 많다 보니 더러 무익하거나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목격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정원사 차림을 하고 수레에 꽃나무를 싣고 온 퍽이 꽃 즙을 라이샌더의 눈에 바르는 대신 꽃나무를 송두리째(뿌리에 흙덩이까지 매달린 채로) 라이샌더의 얼굴에 내던지고, 나중에는 더욱 강하고 신속한 약효를 내게 하기 위해서인지 꽃나무들을 아예 그의 샅 부위에 쏟아 붓는 것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나 그 이상의 효과는 별반 없는 듯 하다. 에로티시즘 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앞서 소개한 사례들과 함께 빈도가 너무 잦아 식상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극의 젊은 연인들이 첫 번째 눈맞춤을 통해 열렬한 사랑이 싹트는 경우가 많은 만큼, 순간적인 웃음을 희생시키더라도 원작대로 눈에 꽃 즙을 바르는 것이 더욱 깊고 간절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관객의 눈길을 끌고 웃음을 유발시키기 위한 고안보다는 의미 있는 창안이 더욱 바람직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머지 공연들도 한결같이 참신성이 돋보였는데 앞에서 다루지 않은 사례들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공연에서 본극이 끝난 후 다시 디스코테크 밖으로 옮겨 뉘어진 슬라이가 그를 아는 두 여자가 지나가다가 잠을 깨우자, 그들에게 그의 생애 최고의 꿈을 깨웠다고 막 야단치는데 그 중 한 명을 본극의 캐써리나 역을 맡은 모니카 돌란으로 설정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평소에 관심이 있어 결혼하고 싶었지만 하도 말괄량이라서 뜻대로 되지 않아 한 번 콧대를 꺾어놓고 싶었던 여자에게 꿈속에서나마 승리를 거둔 달콤한 공상이 깨어진 것에 대한 화풀이를 그 당사자에게 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남성우월주의를 조롱하기 위해 원작에 없는 장면을 삽입시킨 독창적 처리이다.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에서 타이먼이 베푼 향연의 단골손님들이자 그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아온 두 귀족이 터키탕에 나란히 누워 마사지를 받으면서 타이먼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 그 중 한 사람의 팔을 마사지걸이 실수인 척 아프게 꺾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관객에게 폭소와 통쾌감을 선사하면서 인간의 배은망덕을 질타하는 기발한 고안이다. 또한 앤토니가 죽은 후 낙담한 클레오파트라가 화장기 없는 추한 중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여왕의 화려하게 치장한 외면 속에 감추어진 실체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처리라 하겠다. {오쎌로} 공연에서 강한 성적매력을 발산하는 젊은 오쎌로를 기용한 것과 {리어왕} 공연에서 리어의 가련하고 연약한 모습을 강조한 것은 두 극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나, 참신성 제고가 비극성 약화를 초래함으로써 득보다 실이 큰 경우로 보여진다.

7. 결론

지금까지 일곱 공연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1999년 RSC 셰익스피어극 공연동향은 관객위주 공연이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현대화, 시각적 효과 극대화, 에로티시즘 고조, 비극성 완화, 참신성 제고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사로잡은 결과 대부분의 공연이 관객유치에 성공하였다. {맥베스}와 {한여름밤의 꿈} 공연이 관객의 가장 열렬한 호응을 얻었고,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영국 전역과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까지 관객을 찾아가 성황리에 순회공연을 마쳤으며, 심지어는 연극비평계의 혹평을 받은 {리어왕} 공연조차도 흥행에는 성공하였다. 특히 셰익스피어극 중 지명도가 낮아 흥행실패 가능성이 높은 {아테네의 타이먼} 공연을 과감히 대극장 RST에 올린 RSC의 결단을 높이 사줄만 하며, 더욱이 이 공연이 전술한 다양한 관객중심 공연전략을 펼친 결과 흥행성공을 거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가능한 한 최대다수의 관객유치를 지향하는 RSC의 목표는 절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극단 운영을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공연의 예술성이 밑받침될 때 연극이라는 고급예술의 대중전파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칭찬할 만한 훌륭한 목표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대중화란 반드시 셰익스피어의 상품화 혹은 저질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1999년 RSC 셰익스피어극 공연에도 흥행성공 외에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병행되었는데 그 공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일곱 공연 중 {리어왕}을 제외한 여섯 공연이 시도한 현대화는 대부분의 경우―특히 {말괄량이 길들이기}, {맥베스}, {아테네의 타이먼}에서―극의 주제와 내용의 현대적 관련성과 중요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오쎌로}를 제외한 다섯 공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각적 효과에 있어서도 외화내빈에 그친 {리어왕}을 제외한 네 공연 모두―{한여름밤의 꿈}, {맥베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아테네의 타이먼}―가 관객에게 높은 심미적 만족감을 선사하면서 작품의 주제와 분위기를 강조해 준다. 일곱 공연 모두에 한결같이 보여지는 에로티시즘은 작품 내용에 부합되거나 주제를 강조해주는 효과적인 경우도 많으나, 그 농도나 빈도가 과다할 경우 더러 무익하거나 역효과를 내는 사례가 목격된다. 다섯 편의 비극 공연 중 {맥베스}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의 공통적 경향인 비극성 완화는 예외 없이 예술성을 저하시키는데, 장엄하거나 숭고한 비극은 더 이상 RSC의 목표가 아닌 듯 하여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모든 공연―특히 {맥베스}와 {한여름밤의 꿈}―에 두드러지게 발휘된 참신성은 무익하거나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고 주제를 부각시키며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을 제공한다.

RSC가 항상 관객을 의식하고, 배려하고, 매료시켜서 보다 많은 관중을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높이 사줄 만 하나 그 과정에서 원작의 품위와 예술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의미한 시각적 흥미 제공, 성적 자극, 비극의 심각성 배제, 일회성 흥미를 제공할 뿐인 참신성 등 관객의 저속한 취향에 의존하는 것보다 {맥베스}처럼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가 가장 잘 이루어진 공연이 가장 많은 관객과 연극비평가들의 절찬을 이끌어낸 1999년 RSC 셰익스피어극 공연의 백미였음을 RSC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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